서른아홉에 자신을 아껴 주던 임금 정조를 잃고, 이듬해 천주교 박해에 휘말려 형제들과 함께 무너진 정약용은 남쪽 끝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벼슬도, 가족도, 내일도 멈춘 그곳에서 그는 주역을 붙들었고, 몇 해에 걸쳐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써 냈습니다. 점을 쳐서 나갈 날을 묻는 대신, 상징이 왜 그런 뜻을 갖는지를 끝까지 따져 물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가 남긴 것
유배지에서 쓴 『주역사전』. 점의 답이 아니라, 상징을 읽는 방법을 남겼습니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시간에,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나요? 그것은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나요?
원문과 출처
정약용, 『주역사전(周易四箋)』
1703년 · 독일 하노버 ·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300년 전, 0과 1이 주역을 만났을 때
0과 1, 두 숫자만으로 모든 수를 적는 이진법을 연구하던 라이프니츠에게 중국에 있던 선교사 부베가 복희의 64괘 그림을 보내왔습니다. 끊긴 선과 이어진 선이 늘어선 그 그림에서, 그는 자신이 찾던 0과 1의 질서를 보았습니다. 1703년, 그는 이진법을 소개하는 글에 64괘를 함께 실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 뒤의 일
이진법은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우문현답이 4,096가지 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도 같은 0과 1입니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아주 오래된 것과 아주 새로운 것이, 내 삶에서 만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원문과 출처
라이프니츠, 「이진 산술에 대한 설명」(1703)
1949년 · 스위스 · 심리학자 칼 융
이 오래된 책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할까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 영어판의 서문을 부탁받은 융은 독특한 일을 했습니다. 주역에게 직접 물은 것입니다. "서양의 독자에게 너를 소개하려는 나의 계획을 어떻게 보느냐." 동전을 던지자 솥의 괘, 정(鼎)이 나왔고 둘째와 셋째 효가 움직였습니다.
50 · 화풍정(鼎) · 구이·구삼
그가 읽어 낸 것
융은 이 괘를, 책이 스스로를 "귀한 양식이 가득 담겼지만 아직 제대로 쓰이지도, 맛보아지지도 않은 솥"으로 소개한 것이라 읽었습니다. 셋째 효의 "꿩고기를 먹지 못한다(雉膏不食)"처럼요.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아직 아무도 맛보지 못한, 내 안의 "꿩고기"는 무엇일까요?
원문과 출처
鼎有實……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
C. G. 융, 빌헬름·베인스 영역 『주역』 서문 (1949)
1951년 · 미국 뉴욕 · 작곡가 존 케이지
내 취향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들릴까
케이지는 피아노곡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s)」을 쓰면서, 어떤 음을 얼마나 길고 세게 칠지를 직접 고르지 않았습니다. 동전을 던져 얻은 주역의 괘로 하나하나 정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운을 맡기는 일이 아니라, 늘 같은 것을 고르게 만드는 자기 취향과 습관에서 소리를 풀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 뒤의 일
「변화의 음악」은 20세기 음악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 되었습니다. 제목의 "변화(Changes)"는 주역(Book of Changes)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