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 · 연재

옛 물음

이천오백 년 전 노나라의 궁에서, 강진의 유배지에서, 취리히 호숫가의 서재에서 사람들은 주역 앞에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내린 답을 읽고, 그 물음을 오늘의 나에게 돌려 봅니다.

기원전 564년 · 중국 노나라 · 목강(穆姜)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아니라는 걸 알 때

권력 다툼에 휘말려 궁 한쪽에 갇히게 된 목강은 점을 쳤습니다. 점을 맡은 관리는 "따름(隨)의 괘이니 곧 나가실 겁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목강은 괘사의 네 가지 덕, 크고(元) 형통하고(亨) 이롭고(利) 곧음(貞)을 하나씩 짚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초이삼사오상
17 · 택뢰수(隨)

그녀가 스스로 한 말

"이 네 가지 덕을 갖춘 이라야 따라도 허물이 없다. 나는 하나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 허물이 없겠는가."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남들이 괜찮다고 말해 줄 때, 내 안에서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원문과 출처

有四德者,隨而無咎。我皆無之,豈隨也哉?我則取惡,能無咎乎?

『춘추좌전』 양공 9년

기원전 530년 · 중국 노나라 · 남괴(南蒯)와 자복혜백

좋은 괘가 나왔으니, 해도 되는 거죠?

주인에게 반기를 들 계획을 세운 남괴는 몰래 점을 쳐 "누런 치마이니 크게 길하다(黃裳元吉)"는 구절을 얻었습니다. 크게 기뻐한 그는 이 괘를 어른 자복혜백에게 보이며 큰일을 하려는데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혜백은 괘가 아니라 그 일의 마음을 되물었습니다.

초이삼사오상
2 · 중지곤(坤) 육오

그날의 한마디

"충성되고 미더운 일이라면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무너진다. 주역으로는 위험한 일을 점칠 수 없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이미 마음속에 정해 둔 답을, 확인받으려고 묻고 있지는 않나요?

원문과 출처

忠信之事則可,不然必敗。……且夫易,不可以占險。

『춘추좌전』 소공 12년

기원전 5세기 무렵 · 중국 · 공자와 제자 자공

잘 꾸며진 나와, 그냥 나 사이에서

공자가 점을 쳐서 꾸밈의 괘인 비(賁)를 얻고는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자 자공이 의아해 물었습니다. "비괘도 좋은 괘인데 어찌 좋지 않다 하십니까?"

초이삼사오상
22 · 산화비(賁)

그가 스스로 한 말

"흰 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어야 한다. 꾸밈이 또 무엇이 좋겠는가."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꾸미지 않은 나라면, 지금 무엇을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요?

원문과 출처

孔子卜,得賁。孔子曰:「不吉。」子貢曰:「夫賁亦好矣,何謂不吉乎?」孔子曰:「夫白而白,黑而黑,夫賁又何好乎?」

『여씨춘추』 「일행(壹行)」

1801~1808년 무렵 · 조선 강진 · 다산 정약용

모든 것이 멈춘 시간에 붙든 한 권

서른아홉에 자신을 아껴 주던 임금 정조를 잃고, 이듬해 천주교 박해에 휘말려 형제들과 함께 무너진 정약용은 남쪽 끝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벼슬도, 가족도, 내일도 멈춘 그곳에서 그는 주역을 붙들었고, 몇 해에 걸쳐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써 냈습니다. 점을 쳐서 나갈 날을 묻는 대신, 상징이 왜 그런 뜻을 갖는지를 끝까지 따져 물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가 남긴 것

유배지에서 쓴 『주역사전』. 점의 답이 아니라, 상징을 읽는 방법을 남겼습니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시간에,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나요? 그것은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나요?

원문과 출처

정약용, 『주역사전(周易四箋)』

1703년 · 독일 하노버 ·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300년 전, 0과 1이 주역을 만났을 때

0과 1, 두 숫자만으로 모든 수를 적는 이진법을 연구하던 라이프니츠에게 중국에 있던 선교사 부베가 복희의 64괘 그림을 보내왔습니다. 끊긴 선과 이어진 선이 늘어선 그 그림에서, 그는 자신이 찾던 0과 1의 질서를 보았습니다. 1703년, 그는 이진법을 소개하는 글에 64괘를 함께 실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 뒤의 일

이진법은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우문현답이 4,096가지 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도 같은 0과 1입니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아주 오래된 것과 아주 새로운 것이, 내 삶에서 만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원문과 출처

라이프니츠, 「이진 산술에 대한 설명」(1703)

1949년 · 스위스 · 심리학자 칼 융

이 오래된 책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할까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 영어판의 서문을 부탁받은 융은 독특한 일을 했습니다. 주역에게 직접 물은 것입니다. "서양의 독자에게 너를 소개하려는 나의 계획을 어떻게 보느냐." 동전을 던지자 솥의 괘, 정(鼎)이 나왔고 둘째와 셋째 효가 움직였습니다.

초이삼사오상
50 · 화풍정(鼎) · 구이·구삼

그가 읽어 낸 것

융은 이 괘를, 책이 스스로를 "귀한 양식이 가득 담겼지만 아직 제대로 쓰이지도, 맛보아지지도 않은 솥"으로 소개한 것이라 읽었습니다. 셋째 효의 "꿩고기를 먹지 못한다(雉膏不食)"처럼요.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아직 아무도 맛보지 못한, 내 안의 "꿩고기"는 무엇일까요?

원문과 출처

鼎有實……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

C. G. 융, 빌헬름·베인스 영역 『주역』 서문 (1949)

1951년 · 미국 뉴욕 · 작곡가 존 케이지

내 취향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들릴까

케이지는 피아노곡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s)」을 쓰면서, 어떤 음을 얼마나 길고 세게 칠지를 직접 고르지 않았습니다. 동전을 던져 얻은 주역의 괘로 하나하나 정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운을 맡기는 일이 아니라, 늘 같은 것을 고르게 만드는 자기 취향과 습관에서 소리를 풀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64괘를 아래 줄부터 이진수로 읽어 차례로 늘어놓은 모습

그 뒤의 일

「변화의 음악」은 20세기 음악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 되었습니다. 제목의 "변화(Changes)"는 주역(Book of Changes)에서 왔습니다.

오늘 나에게 비추어 보면

내가 늘 고르는 선택을 한 번 내려놓으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요?

원문과 출처

존 케이지, 「변화의 음악」(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