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긷기 전에, 우물 벽부터
우문현답 첫 화면에는 우물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그림 아래 적힌 글이 수풍정(水風井) 넷째 줄의 말입니다. 「한 효 천천히」의 첫 줄로 이 효를 고른 까닭입니다.
井甃 无咎
우물 벽을 쌓으니 허물이 없다.
글자를 하나씩
井은 우물입니다. 마을 사람 누구나 와서 물을 긷는 곳이지요. 甃는 벽돌로 우물 안쪽 벽을 쌓는다는 뜻입니다. 흙벽이 무너지지 않게, 물이 흐려지지 않게 안을 단단히 하는 일입니다. 无咎는 허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크게 좋다는 말이 아니라, 잘못될 것이 없다는 담담한 말입니다.
이 줄을 풀이한 상전(象傳)은 짧게 덧붙입니다.
井甃无咎 脩井也
우물 벽을 쌓아 허물이 없음은, 우물을 손보는 것이다.
우물의 여섯 자리
정괘의 여섯 자리는 저마다 우물의 한 모습을 그립니다. 맨 아래 첫째 줄은 진흙이 고여 마실 수 없는 우물이고, 둘째 줄은 물동이가 깨져 물이 새는 우물입니다. 셋째 줄은 맑은데도 아무도 길어 마시지 않는 우물입니다. 넷째 줄은 우물을 손보는 모습이고, 다섯째 줄은 맑고 찬 샘물을 마시는 모습, 맨 위는 덮개 없이 모두에게 열린 우물입니다. 한 우물이 차례로 겪는 일이라기보다, 우물이 놓일 수 있는 여섯 가지 처지입니다.
넷째 줄은 물을 긷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길어 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에 길어 올릴 물이 흐려지지 않도록 안을 쌓습니다.
오늘의 장면
일이든 관계든,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길어 올리며 삽니다. 성과를 내고, 마음을 쓰고, 곁의 사람에게 물을 건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물이 탁해지거나 마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 넷째 줄은 더 깊이 두레박을 내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벽을 보라고 합니다. 잠, 몸, 오래된 습관, 나를 지탱하던 사람들. 겉으로는 아무 성과도 없어 보이는 그 일을 옛사람은 "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처방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내 안의 어느 벽이 떠오르는지는 읽는 분이 스스로 찾으실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