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 · 서재 일기 · 1

팔지 않기로 하다

2026년 10월 29일 · 김지웅

井 ·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 마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않는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

우문현답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AI가 써 준 사업 계획서를 하나 받았습니다. 숫자가 꼼꼼했습니다. 월 매출 목표, 회원 가입, 한 번에 3,900원, 한 달 구독 8,900원, 기록을 보관해 주는 클라우드까지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계획이 틀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이트는 이용자에게 "고민은 내 AI에 가져가 이야기하세요"라고 권합니다. 사생활이 담긴 고민이라 우리 서버에 모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획서대로라면 사이트가 스스로 권하는 무료의 길과, 팔려는 상품이 서로 다투게 됩니다.

잘 팔리는 것과 이 공간

한국에서는 즉흥적이고 가볍게 즐기는 운세 콘텐츠가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진지하게 오래 생각하는 서비스는 활성화되기 쉽지 않다고도 합니다. 시장은 "맞히는 것"에 돈을 냅니다.

우문현답은 맞히지 않습니다. 첫 화면에는 순자의 말을 걸어 두었습니다.

善爲易者不占

역을 잘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맞히지 않겠다고 약속한 곳이 맞히는 상품처럼 팔리기는 어렵습니다. 억지로 그렇게 만들면 약속이 먼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한 것

초이삼사오상
수풍정 상육 井收勿幕 有孚元吉 — 길어 올린 우물을 덮어 두지 않는다

먼저 이 공간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쓰는 분들에게 평가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원 가입도, 유료 결제도 미뤄 두었습니다. 우문현답은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사색하는 곳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고쳐 주지 않는다. 다르게 보게 해 준다." 이 약속은 거래보다 동행에 어울립니다. 빨리 커지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이 선택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질문은 남아 있습니다. 무료를 지키는 데에도 비용이 듭니다. 그 답은 서두르지 않고, 이 우물가에 모이는 분들과 함께 찾아가려 합니다.

이제, 읽는 당신에게

당신이 만들거나 지키고 있는 것 가운데, 값을 매기지 않기로 한 것은 무엇인가요?

내 고민으로 괘를 얻어 보기 → 편지로 답하기 ✉